‘후궁으로부터의 유괴 (Die Entfuehrung aus dem Serail)’
3막의 징슈필
리브레토: 고틀리브 스테파니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제목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 한국의 유럽 고전음악 수용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는 주제이기도 하죠. 가령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과거에는 일본식 번역인 ‘춘희’ 라는 제목을 훨씬 많이 썼지만, 지금은 거의 ‘라 트라비아타’로 통일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식 번역인 ‘마적’은 한 때 널리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완전히 사라졌죠. 베버의 ‘마탄의 사수’ 같은 경우는 아직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이 제목을 보고 원제인 ‘Der Freischuetz’ 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아니 그보다, 도대체 ‘마탄의 사수’가 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요?)

‘후궁으로부터의 유괴’의 원제인 ‘Die Entfuehrung aus dem Serail’ 에서 ‘entfuehrung’ 은 영어 단어로는 ‘abduction’ 이 가장 가깝습니다. 물론 이 단어는 ‘유괴’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되긴 합니다만, 오페라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 제목은 항의와 이의 제기를 받아 왔죠. 원래 벨몬테의 연인인 콘스탄체가 이국의 군주인 파샤의 후궁에 억지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벨몬테가 그녀를 구출하려는 것이 이 오페라의 줄거리이므로, 이 제목은 ‘후궁 탈출’이 더 맞다는 겁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시면 알겠지만, 요즘은 ‘후궁 탈출’ 이라는 제목이 더 자주 쓰입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원래 의도했던 것은 상당히 센세이셔널한 제목이었습니다. ‘serail’ 이라는 단어도 점잖게 ‘후궁’ 이라고 번역해서는 그 효과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습니다만, 원래 이 단어의 의미는 이슬람 군주의 궁에 있는 할렘, 즉 성적인 시중을 드는 노예들의 거처 라는 뜻에 가장 가깝습니다. 즉 ‘성적 노리개가 된 애인이 갇혀 있는 할렘으로부터, 애인을 유괴해 도망가다’ 는 뜻이 아마도 원래 의도와 가장 맞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도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라는 제목을 조금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시다시피,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와 결별하고 빈으로 이사온 후 작곡한 첫 번째 작품입니다. 또한 작품의 성립과 당시 빈에서 오스트리아를 통치하고 있던 계몽 군주 요제프 2세의 일련의 개혁 정책은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다고 할 수도 있죠. 왜냐하면 귀족들의 특권과 복잡한 허례 허식을 폐지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요제프 2세로서는 시민들을 위한 오페라 프로덕션을 만들기 원했고 프랑스어나 이탈리아 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평민이나 시민 계급을 위해 독일어 작품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작품을 의뢰하게 될 모차르트는 당시 유럽 음악계를 주도하던 이탈리아 인이나 프랑스 인이 아닌 오스트리아 토박이인데다 - 물론 잘츠부르크는 교황령이기는 했습니다만, 모차르트는 어쨌든 독일어가 모국어였으니까요 -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젊은 작곡가였다는 사실 역시 황제가 그에게 이 작품을 의뢰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모차르트로서는 지긋지긋한 잘츠부르크 대주교로부터 해방되고,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며- 의미심장하게도 ‘후궁으로부터의 유괴’의 여주인공 이름 역시 콘스탄체 입니다 ? 빈에서 프리랜서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는 중요한 대규모 첫 작품인데다, 계몽 군주의 개혁 드라이브에 편승하는 야심찬 작품이었으니 아마도 그의 재능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당시 유럽에서는 터키풍이 최신 유행이었다고 하니까요.

모차르트가 이 작품에서 5명의 주연들을 위해 써 준 아리아들은 그 선율의 아름다움과 기교의 화려함에서 이후의 어떤 오페라들도 능가하지 못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피가로의 결혼’ 이후의 작품들이 극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후궁으로부터의 유괴’보다 한 수 위이긴 합니다만, 음악 자체의 다채로움은 역시 ‘후궁’이 최고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초연 당시의 유명한 일화로 요제프 2세는 ‘작품에 음표가 너무 많다’고 했다고 하죠. 아마도 이 에피소드는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벨몬테 역은 아리아만 4개를 불러야 하는 모차르트 테너 역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역 중의 하나이고, 콘스탄체는 서정적이고 조용한 아리아에 뒤이어 바로 저 유명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의 10분에 다다르는 초절정 콜로라투라 기교를 선보여야 하는 소프라노 역할이기 때문에, 어쨌든 이 작품을 제대로 연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케스트라 역시 흥미진진한 음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특히 모차르트는 터키 풍을 제대로 구현해 내기 위해 18세기 오케스트라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타악기들 - 심벌, 트라이앵글 등등 - 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요란하면서도 시끌벅적하고 쾌활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사실 원전 연주 이전에는 적절한 방법으로 연주되기가 어려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성역의 가수들이 필요하고, 오케스트라 역시 현대 악기들로는 그 음악의 정수를 100% 뽑아내기 힘듭니다. 따라서 원전 연주들에 더욱 주목하게 될 수 밖에 없는데, 물론 윌리엄 크리스티의 연주 역시 나름대로 수준 이상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만,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연주가 가장 뛰어난 음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흡이 짧고 기교적으로 조금 부족한 린 도슨은 완전히 만족스러운 콘스탄체라고 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전성기의 우베 하일만이 들려주는 벨몬테의 아리아들은 이를 충분히 보상할 만하고도 남으며, 특히 오스민 역을 맡아 사악하면서도 코믹한 이 역할의 가능성을 남김 없이 보여주는 귄터 폰 칸넨의 성악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오스민 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비록 이 작품에서 터키의 군주를 이성적이고 현명하며,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계몽 군주 요제프 2세에 대한 찬양을 비유적으로 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 여전히 오스민 역이나 할렘이라는 설정 자체에서 나오는 이슬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현대적 관점에서는 약간 껄끄러운 요소밖에는 할 수 없겠습니다. 특히 현실 정치의 이슬람 관련 상황이 심란하기 이를 데 없는 지금과 같은 때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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